"피고인은 중학생 때도 세 번에 걸쳐 성매매를 한 적이 있죠? 당시
남자친구와도 성관계를 가졌고요. 맞죠?" "재판장님, 지금 검사 측은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검사와 피고 측 변호인 간의 팽팽한 공방이 벌어지자 순간 장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아저씨가 10만원을 준다고 해 억지로 모텔에 따라간 것뿐 죄가 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피고인이 최후 진술을 마치고 고개를 떨구자 최종 선고를 내릴 재판장의 입으로 방청객 약 1,000여명의 시선이 쏠렸다. "피고인은 성인
남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성관계를 맺은 점이 인정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청소년이므로 6개월 간 소년보호치료시설에서 교정교육을 받도록 한다."
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내발산동 강서구민회관 대강당에선 특별한 재판이 열렸다. 법복을 갖춰 입고 엄숙하게 앉은 3명의 판사, 날카로운 눈빛으로 증인을 심문하는 검사, 차분하게 앉아 판사의 물음에 답하는 피고인과
변호사는 물론 6인의 증인까지 모두 어린 청소년들이다. 학력인정
대안학교인 서울 성지고의 연극동아리 학생 17명이 연출부터
연기까지 직접 참여한 '
청소년 성매매 근절을 위한 형사모의재판'이다.
성지중ㆍ고는 학생 1,000여명 가운데 대다수가 비행 등으로 일반 학교를 중퇴하거나 결손가정의 소년소녀 가장,
학교폭력의 가해 및 피해자들이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모의재판은 범죄에 취약한 환경에 노출된 학생들이 스스로 그 심각성을 되새겨 보는 기회다. 약 1시간에 걸친 재판의
대본 집필은 물론 연기와 의상준비까지 오롯이 학생들이 맡았다. 주제도 심각한 청소년 문제 중에서 직접 선택했다.
이날 모의 재판에서는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남성 A(32)씨와 수 차례 성매매를 한 혐의로 기소된 18세 여고생 설모양에 대한 증인 심문과 선고가 진행됐다. 설양은 끔찍한
가정폭력을 겪다
가출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중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다 수 차례 검거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설정됐다.
직접 경험하진 않았어도 '성매매'라는 또래들의 잘못된 선택을 자주 접하는 터라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끼리 공방도 오갔다. "성매매가 나쁘다는 건 인정하지만 먼저
만남을 제안한 것이 여자인데 미성년자란 이유만으로 처벌받지 않고 성을 산 남성만 처벌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는 박성원(18ㆍ검사 역)군의 말에 최연희(18ㆍ설양 어머니 역)양은 "성인은 무조건 청소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맞서기도 했다.
변호사의 꼼꼼한 자문까지 받아가며 준비한 끝에 재판정에 선 학생들의 결론은 보다 성숙해졌다. 설양의 변호사 역할을 맡은 조은수(17)양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지 않았다면 설양은 가출을 안 했을 것이고, 청소년이 일할 곳이 있었다면 성매매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상처 받은 설양을 기관이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설양의 심리
상담사 역할을 맡은 윤준혁(19)군 역시 "성매매 여고생이 처음엔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만 하다가 상담사 역할을 하면서 왜 그래야만 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친구,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학생들은 청소년 성매매의 폐해와 해결책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